[연중캠페인-성분명처방, 더 이상 미룰수 없다 ①]

의사가 성분명을 쓰면 무엇이 달라질까?

환자의 생명, 약사의 역할, 건강보험의 미래까지 달라질 수 있다면 믿을 수 있을까. 성분명처방은 단순한 기술적 조정이 아닌, 보건의료 시스템의 투명성과 공공성 회복을 위한 구조 개혁이다.

성분명처방은 의사가 처방전 작성 시 ‘상품명’ 대신 ‘성분명’을 표기하는 제도를 말한다. 현행법상 일반명칭 또는 제품명 기재가 둘 다 허용되지만 실제 의료현장에서는 거의 모든 처방이 특정 회사의 상품명으로 이뤄지고 있다.

한 연구에 따르면 실제 보건의료기관이 성분명으로 처방한 건수는 0.006%에 불과하다.

이로 인해 국민, 약사, 정부 모두가 다양한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약이 없어요”…약국 순례를 야기시킨 상품명처방

대표적인 사례는 전 사회적인 혼란을 야기시켰던 라니티딘·발사르탄 사태였다.

2018~2019년, 위장약 라니티딘과 고혈압약 발사르탄에서 발암 가능 물질이 검출돼 전량 회수 조치가 내려졌다.

문제는 회수 제품이 특정 성분(라니티딘, 발사르탄)에 기반한 수십 개 브랜드로 나뉘어 있어, 약국과 병원, 환자 모두 어떤 약을 먹었는지조차 파악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수년 째 이어져 오고 있는 ADHD 치료제 ‘콘서타’와 일부 항생제 품절 사태도 수많은 환자를 고통스럽게 했다.

코로나 기간 이어진 상당수 의약품의 품절 사태는 더 이상 말 할 것도 없다. 약국은 매일매일 의약품 주문을 위한 ‘광클릭’을 해야했고, 환자들은 약을 찾기 위한 일명 ‘약국 순례’를 다녀야 했다.


상품명 처방은 이런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약사는 동일 성분의 다른 제약사 제품이 있어도 환자에게 대체조제를 하려면 의사의 동의를 구해야 하는 번거로운 절차를 거쳐야 했다.

△제약사-의사 유착, 리베이트의 구조적 연결고리

성분명이 아닌 특정 회사의 상품명을 처방하는 구조는 제약사와 의료기관 간 리베이트 제공과 수수의 유인을 강화한다.

실제 검찰은 2017년 대형병원과 제약사 간의 리베이트 사건을 수사하며 “성분명처방 제도화가 리베이트 근절의 실질적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지난 2일 국민건강보험노동조합이 입장문을 내고, 성분명처방 도입을 주장한 배경도 D제약의 불법 리베이트 의혹이 수면 위로 올라온 때문이었다.

건보노조는 제약-의료 공급자 간 불법 리베이트에 대해 △건강보험 재정 누수를 초래하고 △의료비 상승과 환자 부담 가중을 유발하는 한편 △환자 건강권 침해 △의료의 공공성과 신뢰를 심각하게 훼손한다고 밝혔다.

노조에 따르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우리나라의 제네릭 약가는 리베이트만으로 막대한 이윤을 보장하는 구조이다. 이는 신약 개발은커녕 최소한의 연구조차 필요 없는 리베이트 중심 영업을 가능하게 하며 국민 건강권과 건강보험 재정을 잠식하는 악순환을 고착화하고 있다. 단속과 처벌로 이어지는 경우의 수는 빙산의 일각이라는 지적이다.

따라서 성분명처방이 상품명 처방권을 이용한 리베이트를 차단하고, 동일 성분 간 가격 경쟁을 통한 건강보험 재정 절감과 과다처방·중복처방을 방지하는 합리적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공급자 간 경쟁과 소비자 선택기반 경쟁은 상호보완적으로 작동해 왜곡된 약가구조와 리베이트 구조를 근본적으로 해체하는 가장 효과적인 정책 조합이라는 평가다.

△“값싼 약이 있어도 못 준다”… 한국과 달랐던 스웨덴의 해법

성분명처방은 이미 선진국에서는 보편화된 제도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대표적으로 성분명처방으로 인해 막대한 이익을 내고 있는 국가는 스웨덴이다.

특히 국내 의료계가 “오리지널과 제네릭 사이 약가 차이도 미미한데 성분명처방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반문할 때, 스웨덴의 입찰제 기반 성분명처방 및 강제 대체조제 제도는 이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스웨덴은 2002년, ‘이달의 의약품 제도(Periodens Vara)’를 도입하며 제네릭 사용률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렸다. 이 제도는 매월 각 성분별로 가장 저렴한 의약품을 공개입찰로 선정해 그 달의 지정 조제 의약품으로 지정하는 방식이다.

의사는 성분명으로 처방하고, 약국은 반드시 이달의 의약품으로 조제해야 하며, 환자는 다른 제품을 원하면 차액을 본인이 부담하는 방식이다.

스웨덴의 이 제도는 제네릭 시장의 경쟁을 극대화시키며 즉각적인 약가 인하를 실현했다. 입찰제 도입 이후, 특정 성분의 약가는 초기 대비 30~90%까지 하락한 사례가 보고됐다.

이를 통해 스웨덴 정부는 연간 수천억 원에 달하는 약제비를 절감하고 있으며, 환자 본인부담 역시 줄어들어 건강보험의 지속 가능성과 국민 만족도 모두 향상됐다.

스웨덴 제도는 의사 뿐 아니라 약국의 자율적 제품 선택 권한을 제거해 제약사-의원-약국 간 리베이트의 빌미를 원천적으로 차단했다. 약사는 복약지도 등 본연의 약료 서비스에 집중한다. 반면 환자는 지정 약이 아닌 오리지널 제품을 원할 경우 그 차액을 본인이 부담하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이는 가격 정보 공개와 비용 의사결정을 환자 중심으로 설계한 투명한 구조다.

비단 스웨덴 뿐만이 아니다.

프랑스도 성분명 처방 의무화하고 오리지널 제품 사용 시 환자가 추가 비용을 부담하도록 한다.

독일과 스위스도 성분명-상품명 병용 허용하며, 약사는 최저가 제네릭을 우선 조제하도록 했다.

공통점은 환자의 약 선택권 보장, 약사 권한 강화, 재정 절감 효과 실현이다.

△성분명처방을 도입하면 어떤 변화가 올까

성분명처방의 전환은 품절이나 수급불안 상황에서도 환자가 필요한 만큼 제때 받을 수 있도록 한다. 이는 국민의 약물 접근성을 높여 건강권을 실질적으로 보호하며 단골약국에서 체계적인 약력관리를 통한 건강관리가 가능해지도록 한다.

또 자신이 복용하는 약의 성분을 명확히 알 수 있어 중복-부작용 등을 예방한다.

특히 환자는 약의 성분과 가격 등 정보를 바탕으로 합리적 선택을 할 수 있어 권리가 강화된다.

재정절감은 물론이다. 다양한 제네릭 의약품 사용이 촉진되면 제약사 간 가격 경쟁이 유도되어 약가가 인하되고, 그 결과 건보 재정의 부담이 경감된다.

정부 입장에서도 의약품 수급 불안정 해결, 국민 건강권 보장, 건보 재정 안정화, 환경오염 예방 및 비용 절감 등의 이점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자명하다.

한편 이번 캠페인은 현재 상품명 처방으로 인한 폐해와 성분명처방의 순기능을 설명하는 순차적인 기획 기사를 비롯해 SNS 등을 활용한 다양한 형태로 진행될 예정이다.

[출처:약사공론]